빨간 우산 든 여인…필름으로 담은 '50년대 컬러풀 뉴욕'

입력 2022-04-20 18:04   수정 2022-04-21 00:50


사진은 예술의 영역을 끊임없이 동경했다. 회화가 손으로 그려낸 예술이라면, 사진은 빛과 화학물질이 만들어낸 현실 재현에 불과하다는 관념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누구나 손안에 카메라를 쥔 채 살아가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 역설적으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내 전시는 ‘사진전’이다. 1950~1960년대 뉴욕을 소박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울 레이터, 과감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회화화한 안드레아스 거스키, 초현실주의 사진가 에릭 요한슨의 사진이 서울 곳곳에 걸렸다. 이들 전시는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준 회화 작품을 연상해가며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남산 피크닉은 ‘사울 레이터’ 돌풍
서울 남산 자락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사울 레이터-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 3월 말까지 매진이 이어졌다. 전시 연장 요청이 많아 5월 29일로 전시 기간을 2개월 늘렸다. 이 전시장은 오직 필름 카메라만이 구현할 수 있었던 순간들로 가득하다. 디지털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작가의 신중한 시선과 호흡 하나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울 레이터(1923~2013)는 ‘언제나 젊은 이방인’이었다.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난 레이터는 스물세 살이 되던 1946년 가족을 벗어나 홀로 뉴욕으로 갔다. 35㎜ 라이카 카메라로 도시 뒤 숨은 풍경을 담았다. 유리창에 비친 누군가의 얼굴, 구두닦이의 허름한 구두 등 사소한 풍경을 그만의 시선으로 훔쳤다. 굴절되고 반사된 이미지, 그 안의 인물을 응시하면 마치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도 든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인상파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 많다. 큐레이터 제인 리빙스턴은 저서 《뉴욕파: 1936년부터 1963년까지의 사진들》에서 레이터에 대해 “감상적이지 않으면서 서정적이고, 연극적이지 않으면서 마음을 꿰뚫는 듯하다”고 평했다.

레이터는 컬러 사진 시대를 연 1970년대 작가들보다 훨씬 앞선 1940년대부터 컬러 필름을 사용했다. 컬러 사진은 흑백보다 수준이 낮다고 평가받던 시절 화려한 20세기 중반 뉴욕의 황금기를 포착했다. 반세기 넘게 상자에 처박혀 있던 그의 컬러 사진을 2006년 예술서적 출판사 슈타이들이 미인화 필름을 정리·복원하면서 그는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일약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며 ‘잊히길 바랐던’ 그의 유언과 달리 유작들은 전 세계를 돌며 SNS를 통해 ‘오마주 릴레이’가 이어지는 중이다.
세계 최고가 사진은 어떻게 탄생했나

독일 출신 세계적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67)는 미술과 사진의 경계를 과감하게 허무는 작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사진 낙찰가 상위 30위권에 그의 사진이 10점이나 있다. 국내 첫 개인전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에서 개막했다.

거스키는 1992년부터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스캔해 디지털 후반 작업을 해왔다. 사진 간 합성, 회화와의 융합 등 다양한 디지털 조작을 거친 그의 사진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우선 작품들은 압도적으로 크다. 가로 5m에 달하는 작품도 여럿. 거대한 장면으로 독보적인 시각 경험을 주는 동시에 가까이 들여다보면 미세한 디테일이 살아있다. 과거 인류가 두려워한 것이 신과 자연이었다면 현재는 인간이 만들어낸 현대 문명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증권거래소, 아마존 물류센터, 이케아의 공장, 고층 건물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파리, 몽파르나스’(1933)는 거대한 아파트를 나누어 찍은 뒤 디지털 후반 작업으로 완벽하게 이미지가 수평을 이루도록 한 초기 작품이다. 지구에서 3만5000㎞ 떨어진 상공에서 찍은 위성사진은 그 자체로 추상 회화다. ‘바다Ⅱ’와 ‘남극’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의 재현을 넘어 예술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등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 진입시키거나 직접 인용했다.
상상을 찍는 ‘사진계의 달리’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37)은 디지털 작업을 통한 사진이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실험하는 작가다. 스웨덴 출신으로 체코에 거주하는 그는 1년에 8점 정도의 사진 작품을 만든다. 아이디어 구상, 사진 촬영, 후반 작업까지 모든 작업이 계산된 결과다. 한순간 포착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에 100개 이상의 포토샵 레이어를 열어 이를 결합하고 덜어내며 초현실적 이미지를 만든다.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음악과 자연, 다른 작품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다. 2019년 예술의전당에 이어 63빌딩 ‘63아트’에서 전시 중인데 지금까지 14만 명이 다녀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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